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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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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 (1901-1988)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여 끝내 꿈을 이룬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

권기옥은 평안남도 평양에서 아버지 권돈각과 어머니 장문명 사이에서 1남 4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 평양은 산업이 활발한 경제도시이자 기독교 전파로 인해 일찍 개화된 곳이었다. 생활에 무관심한 아버지와 병약한 어머니 대신
어려운 가정 살림을 위해 은단 공장에 다니던 권기옥은 12살에 숭현소학교에 입학한다.
평양에 처음 생긴 장대현교회에서 운영하는 숭인전 옆 숭현소학교를 졸업한 권기옥의 삶은 숭의여학교 입학 이후 달라졌다.
1917년 5월, 경성에 이어 평양에서 곡예비행을 선보였던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멋진 비행을 보고 ‘비행술을 배워 조선총독부를 폭파하리라!’는 꿈을 갖게 되었다.
1918년 4월, 숭의여학교 3학년에 편입학한 후에 교사 박현숙의 소개로 송죽회에 들어갔다.
숭의여학교의 ‘송죽결사대’는 선배가 중심이 된 송형제회와 선배의 추천을 받은 후배의 죽형제회로 구성된 비밀결사대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이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팔거나 수제품 등을 판매한 돈을 모아 독립운동가 가족을 돌보거나 상하이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전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었을 무렵, 송죽결사대는 태극기 200장과 애국가를 등사해 3.1운동에 뛰어들었다.
그해 3월 5일 숭의여학교 기숙사생의 만세 시위 주도로 일본 경찰에 검거돼 3주간 구류되었다가 풀려났으나 이후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책
평양청년회 김재덕과 연결된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6개월 형을 받고 고문을 받았다.
출소한 권기옥은 ‘기독여자전도회’를 결성해 대구, 밀양, 경주 등 전국 20여 곳을 돌며 전도를 가장한 민족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연락책 역할을 했으며,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를 운반하고 판매하여 그 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일을 했다.
1920년 7월 평남도경 폭파를 위해 잠입한 임정 산하 청년단원들을 숭현보통학교 석탄 창고에 숨겨주고, 당일 현장까지 폭탄 운반하는 일을
도운 혐의로 ‘조선용의자 133’ 명단에 오르며 일본 경찰의 추적이 시작되었다.
그때 권기옥은 중국 망명을 결심하고 시골 여인으로 변장해 중국배 목선을 타고 상하이로 탈출했다.
상하이로 망명한 권기옥은 김순애, 손정도, 안창호, 노백린 등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면서 비행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도전을 거듭했다. 1923년 6월에 홍따오여학교 졸업, 상하이인성학교 교사를 하며 기다리다 임시정부 이시영 선생의 추천서와 탕지야오(당계요) 성장의 추천서를 받아 기어코 1924년 24세에 중국 윈난육군항공학교에 입학했다. 혹독한 훈련과정을 이겨내고, 그해 7월에 훈련 비행 9시간 만에 단독비행에 성공했다.
그 뒤 1925년 2월 입학생 서른네 명 중에 열두 명만이 항공학교를 졸업했다. 졸업한 뒤에는 베이징 펑위샹 항공대, 동로군 항공대의 항공사
령부비항원(소령) 등 10여 년간 중국 장제스 휘하의 공군 비행원으로 활동하며 7,000여 비행시간을 달성한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로 이름을 알렸다.
1928년에 내몽골 바오터우에서 독립운동가 이상정을 만나 결혼했다. 1932년에는 상하이사변에서 정찰기로 일본군에 기총소사를 해 중국 정부로
부터 무공훈장을 받았으며, 1935년 중국 청년들의 공군 입대 독려를 위한 선전비행을 준비하다 무산되었다. 1936년 스파이 혐의로 13년간 활동한 비행사 옷을 벗었고, 무혐의로 풀려난 이듬해부터 중국 정부의 요청으로 부부가 육군참모학교 교수로 활동했다. 1943년에는 임시정부 소속의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참여와 공군설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에 한국광복군 비행대 편성과 한국광복군 건군 작전 계획에도 참여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국가 재건에 힘을 쏟아 국회 국방위원회 전문위원, 여성 전문위원을 거치며 한국 공군 창설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47년에 남편 이상정이 먼저 귀국했으나 뇌내출혈로 갑자기 사망했다. 1948년 8월에 귀국한 권기옥은 우리의 역사 기록을 위해 1957년부터
1972년까지 15년간 <한국연감>을 발간했다. 1971년 장제스 부부로부터 중화민국(대만) 비행흉장 공군 일급상장을 받으며 대한민국 공군의 창설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5년에 자신의 전 재산을 어려운 청년들을 위한 장학 사업으로 사회에 환원했으며, 1988년 4월 19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국가보훈처에 2003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그는 한국 근현대사를 넘나든 선각자이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꿈에 도전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권기옥의 공적을 기려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