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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사

구정연혁

  • 서대문구 일대는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며 취락을 형성해 온 지역으로 한강유역을 둘러싸고 치열한 영토쟁탈전이 벌어졌던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의 땅이었으나 A.D 475년에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A.D 553년에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 통일신라시대에는 한양군으로, 고려시대에는 12목의 하나인 양주로 개칭되었으며 1396년 조선초 서울의 4대문 가운데 하나인 돈의문, 즉 서대문이 건립됨으로써 지금의 지명을 얻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태조는 한양을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 52방의 행정구역으로 분류하였으며 서대문구는 서부에 속하여 반송방, 반석방, 상평방, 연희방, 영은방의 일부 지역으로 중국과의 교류시 진입로 역할을 하였다.
  • 1910년 한일병합시 한성부와 경기도 고양군에 각각 분리, 편입되었다가 1943년 區制가 실시되면서 서대문구역소가 경성부내에 설치되었으며, 1945년 10월 6일 서대문구역소를 서대문구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1949년 8월 13일 서울특별시 구역확장에 따라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전부를 서대문구로 편입하여 은평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62년 12월 28일 대신동을 신설하고, 1964년 6월 1일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서대문구의 노고산동과 대현동 일부지역이 마포구로 편입되고, 마포구의 아현동 일부지역을 서대문구로 편입하였다. 1973년에는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의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가 서대문구에 포함되어 진관동을 신설하였고, 마포구의 동교동, 서교동 일부가 서대문구에 편입되고, 서대문구의 성산동, 연희동 일부가 마포구로 편입되었다.
  • 1975년 대규모의 구관할구역 변경에 따라 서대문구 관할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즉, 서대문구 관할의 평창동, 구기동,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행촌동, 송월동, 홍파동, 평동과 교남동, 교북동, 현저동, 충정로1가의 각 일부가 종로구에 편입되었고, 서소문동, 정동, 순화동, 의주로 2가, 중림동과 의주로1가, 충정로1가, 합동, 충정로3가, 만리동 1,2가의 각 일부는 중구에 편입되었다. 또한 상암동, 성산동과 수색동, 중동, 남가좌동, 연희동 각 일부를 마포구로 넘겨주고 만리동 1, 2가 일부를 용산구에 넘겨 주었으며, 마포구의 동교동 일부를 서대문구에 편입하였다.
  • 1979년 10월 1일 은평구청 신설로 그동안 은평출장소 관내에 속했던 녹번동, 불광동, 갈현동, 구산동, 대조동, 응암동, 역촌동, 신사동, 증산동, 진관내·외동, 구파발동, 수색동의 13개동이 서대문구 관할에서 제외되고 은평출장소는 폐지되었다.
  • 1980년에는 홍은4동을 폐지하였고, 1983년에 홍제1동 일부를 홍제2동으로 편입하였으며, 1989년에는 대현동 일부를 북아현3동으로, 북아현3동 일부를 충정로3가로 편입하였고, 1998년 10월 행정구역 변경으로 현저동이 천연동으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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