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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애환이 켜켜이 쌓이던 모래내시장의 어제와 오늘 (김양훈기자)

  • 등록일 : 2022-01-18 14:07
  • 조회수 : 1767

서민의 애환이 켜켜이 쌓이던 모래내시장의 어제와 오늘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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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애환이 켜켜이 쌓이던 모래내시장, 그곳에 얽힌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연신내 술집에선 연신 술값을 내라 하고, 모래내시장에 가면 모레 내도된다.”

​언어는 삶을 반영한다. 모래내시장은 그만큼 정이 많던 동네였다.

 

가재울뉴타운 개발로 그 규모가 수색로4길 골목으로 쪼그라들기 전 모래내시장은

서울의 4대 재래시장이라 불릴 만큼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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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환국한 사람들 일부가 이곳에 정착했고, 1959년에는 사라호 태풍으로 수재를 입은

이촌동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1960년대 홍제천의 범람을 막으려고 쌓은 방죽에는

후암동과 도동에서 쫓겨난 철거민의 판잣집이 하나둘 들어찼다.

​둑 뒤편 쓰레기 매립장은 큰 비만 오면 시궁창으로 변했다.

​그래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인 살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1966년 7월 103개 점포 규모의 모래내시장이 설립되었고 주변의 삼거리시장,

​일산시장, 복지시장, 중앙시장, 오금석시장, 좌원시장이 어우러졌다.

1973년 2월에는 113개 규모의 서중시장이 들어서며 모래내시장은 서북부지역의 유통 중심이 되었다.

​일산과 능곡 등지의 농산물이 여기로 모이고 팔려나갔다.

​연신내, 홍제동, 성산동, 망원동, 상암동 주민들의 생필품 조달처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러나 모래내시장은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서울시가 가좌동 지역을 수도권 전철 경의선 개통에 맞추어 재개발하기로 하면서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가재울뉴타운이다.

2003년 처음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이후 2009년에 완공된 아파트단지에 입주가 시작됐다.

​모래내시장과 서중시장 재개발에 이어, 2021년 5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인

좌원상가도 재건축이 확정되었다.

 

기자가 찾아간 날, 옛 서중시장의 흔적은 물론 한때 모래내시장을 구성하던 삼거리시장, 일산시장, 복지시장,

​중앙시장, 좌원시장은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모래내 시장통 골목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곳에는 27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3동이 들어서고, 1층과 2층을 상가로 쓴다고 한다.

​모래내 상인들 가운데 이 공간에 몇이나 들어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모래내 시장통 골목, 수색로4길을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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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 속에도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나이 든 할머니들이 벌인 반찬가게에는 각종 밑반찬이 가득했다.

옆 자리 야채 좌판에는 옛 명물 번데기도 무말랭이와 겨울시금치 사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건어물 점포가 이어지고 바로 튀김집이다. ​

​품목 구별 없이 뒤죽박죽이지만, 없는 게 없던 옛 전성기 모습의 축소판 같았다.

​몇 걸음 더 걷자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 가림막이 절벽처럼 앞을 가로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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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 골목을 되돌아 나오며 가게 진열품을 정리하던 노할머니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여쭈었다.

 “아이고 이 쭈그렁 할망탱이를 뭐 하러 찍어!” 두 손을 저으며 카메라를 막는다.

 “춥지 않으세요?” 묻자, “말만 하지 말고 뭐라도 좀 사가!”

​기억자로 꺾인 허리를 펴며 할머니는 웃어보였다.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에서 가난이 지배하던 수재민과 철거민의 삶을 엿보았다.

​이들과 애환을 함께했던 모래내시장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서대문구 푸드플랜 기자 김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