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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애환이 켜켜이 쌓이던 모래내시장의 어제와 오늘 (김양훈기자)

  • 등록일 : 2022-01-18 14:07
  • 조회수 : 151

서민의 애환이 켜켜이 쌓이던 모래내시장의 어제와 오늘  (2022. 1. 11.)



서민의 애환이 켜켜이 쌓이던 모래내시장, 그곳에 얽힌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연신내 술집에선 연신 술값을 내라 하고, 모래내시장에 가면 모레 내도된다.

언어는 삶을 반영한다. 모래내시장은 그만큼 정이 많던 동네였다.

 

가재울뉴타운 개발로 그 규모가 수색로4길 골목으로 쪼그라들기 전 모래내시장은

서울의 4대 재래시장이라 불릴 만큼 대단했다.

해방 후 환국한 사람들 일부가 이곳에 정착했고, 1959년에는 사라호 태풍으로 수재를 입은

이촌동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했다. 1960년대 홍제천의 범람을 막으려고 쌓은 방죽에는

후암동과 도동에서 쫓겨난 철거민의 판잣집이 하나둘 들어찼다.

둑 뒤편 쓰레기 매립장은 큰 비만 오면 시궁창으로 변했다.

그래서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인 살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19667103개 점포 규모의 모래내시장이 설립되었고 주변의 삼거리시장,

일산시장, 복지시장, 중앙시장, 오금석시장, 좌원시장이 어우러졌다.

19732월에는 113개 규모의 서중시장이 들어서며 모래내시장은 서북부지역의 유통 중심이 되었다.

일산과 능곡 등지의 농산물이 여기로 모이고 팔려나갔다.

연신내, 홍제동, 성산동, 망원동, 상암동 주민들의 생필품 조달처로 사람들이 북적였다.

 

그러나 모래내시장은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사라질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서울시가 가좌동 지역을 수도권 전철 경의선 개통에 맞추어 재개발하기로 하면서다.

그 결과물이 바로 가재울뉴타운이다.

2003년 처음 뉴타운지구로 지정된 이후 2009년에 완공된 아파트단지에 입주가 시작됐다.

모래내시장과 서중시장 재개발에 이어, 20215월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상복합 건물인

좌원상가도 재건축이 확정되었다.

 

기자가 찾아간 날, 옛 서중시장의 흔적은 물론 한때 모래내시장을 구성하던 삼거리시장, 일산시장, 복지시장,

중앙시장, 좌원시장은 사라졌다.

마지막 남은 모래내 시장통 골목만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이곳에는 27층짜리 주상복합 건물 3동이 들어서고, 1층과 2층을 상가로 쓴다고 한다.

모래내 상인들 가운데 이 공간에 몇이나 들어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모래내 시장통 골목, 수색로4길을 들어섰다.

찬바람 속에도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나이 든 할머니들이 벌인 반찬가게에는 각종 밑반찬이 가득했다.

옆 자리 야채 좌판에는 옛 명물 번데기도 무말랭이와 겨울시금치 사이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건어물 점포가 이어지고 바로 튀김집이다.

품목 구별 없이 뒤죽박죽이지만, 없는 게 없던 옛 전성기 모습의 축소판 같았다.

몇 걸음 더 걷자 공사 중인 고층아파트 가림막이 절벽처럼 앞을 가로 막았다.

시장통 골목을 되돌아 나오며 가게 진열품을 정리하던 노할머니에게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여쭈었다.

 “아이고 이 쭈그렁 할망탱이를 뭐 하러 찍어!” 두 손을 저으며 카메라를 막는다.

 “춥지 않으세요?” 묻자, “말만 하지 말고 뭐라도 좀 사가!”

기억자로 꺾인 허리를 펴며 할머니는 웃어보였다.

깊게 파인 주름진 얼굴에서 가난이 지배하던 수재민과 철거민의 삶을 엿보았다.

이들과 애환을 함께했던 모래내시장은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서대문구 푸드플랜 기자 김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