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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우물터 일대는 조선시대 초부터 이궁인 연희궁이 있어 예로부터 궁말, 궁들, 대결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연희궁은 정종 3년(1400) 정종이 아우인 태종에게 왕위를 선위 후 이 곳을 피궁으로 사용하여 세종 7년(1425) 연희궁이라 칭하게 되었고, 이에 궁실 관리들과 궁녀들의 사가가 있어 궁말 여러곳에 우물이 생겼다.
장희빈 우물터인 이 곳은 장희빈 친정집이 가까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숙종의 총애를 받던 폐비 장희빈이 마신 물이라고 옛 어른들이 대대로 가꾸어 오고 있었으며, 2009년 우리동 보물찾기 사업으로 선정하여 원형과 가깝게 복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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